우선 다음 두 영어 문장을 보자. a) This dog is old. b) The old dog is. 여기서 a)의 old와 b)의 old는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영문법에서는 전자를 서술적(predicative) 용법, 후자를 한정적(attributive) 용법이라 구별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속성은 a)가 아닌 b)의 형태로 실체와 관계한다. 이를 들뢰즈는 '속성이 실체의 본질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즉 실존하는 어떤 실체(the old dog)의 본질을 어떤 속성(old) 이 표현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속성은 실체에 귀속되는(attributed) 것이 아니라 그 실체의 실존에 필수적인(necessary) 부속물, 곧 하나의 한정(an attributive)이다. 표현이라는 말을 설명하면서 들뢰즈는 현대의 표현주의 예술을 거론한 바 있는데(SPE 영역판 서문의 편지 참조), 이는 가령 어떤 영화 작품에서 표현(=시청각 영상)이 없이 별도로 어떤 영화의 실체는 없다는 말이다. 이로써 표현은 구성적인(constitutive)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속성들 각각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표현들이다. 앞의 영화의 사례에서, 그 영화의 본질은 시청각 영상이라는 속성을 통해 표현되며, 말하자면 시청각 영상이라는 속성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한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과 사례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기서 실체와 속성의 표현적, 구성적 관계에만 주목해야지, 사례 자체(개, 영화)에 고착되면 곤란하다.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유일하며, 실체의 무한한 속성들은 각각 실체의 본질을 표현하되, 인간에게는 생각과 연장이라는 두 속성을 통해서만 알려진다. 이 경우 생각과 연장은 나란히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다(평행론). 한편, 개나 영화의 예에서 개나 영화는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개와 늙음의 관계, 영화와 시청각 영상의 관계에만 주목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