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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의 Besetzung을 번역한 investissement은 들뢰즈 번역에서 특히 까다롭고 오해를 유발하는 개념이다. 프로이트에서는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를 집중해서 투여하는 것을 Besetzung이라 하며, 이를 불어로 통상 investissement이라 옮긴다. 우리말로는 '투여'라고 옮기거나 '리비도 투여' 또는 '리비도 집중'이라고 옮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들뢰즈에서는 리비도를 생산 에너지로 본다는 점은 프로이트와 거의 같지만, 리비도는 성적 에너지보다 넓은 범위를 지니며, 나아가 성욕(sexuality) 역시도 성적 재생산의 차원을 넘어선다. 물론 이런 점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들뢰즈에서 리비도는 '인간의' 범위를 넘어 '우주 전체'를 가로지르는 생산 에너지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리비도는 무엇을 어디에 investir하는가? 그 대표적인 생산 방식의 예가 자본이다. 자본은 자식을 통해서만 자신이 자본임을 입증하며,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을 자본으로 낳는다. 100파운드는 10파운드의 잉여가치를 낳는 한에서만 자본인 (자본이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리비도는 자신을 투자하여 자신+α(잉여가치)를 낳는다. 이것이 <안티 오이디푸스>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생산하기-생산물'의 동일성이라는 공식이다. 모든 투자는 리비도 자신의 자신에 대한 투자인데, 출발집합인 자신과 도달집합인 자신은 물론 다르지만, 둘 모두가 내재성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 다르지만 같음이 '분리접속 종합'의 의미이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서 '투여'라는 번역어가 통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용어는 들뢰즈가 비판하는 인물적(personal) 틀에 여전히 갇힐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보다는 주로 자본과 관련된 맥락에서 옮겨지는 '투자'라는 번역어가 들뢰즈의 용법을 더 잘 살릴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요컨대, 들뢰즈는 프로이트에서 출발하지만 마르크스를 가로질러 가면서 프로이트를 변용하며, 더 나아가면 니체에 이르려 한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벼려지고 또 벼려진다.